기록: 2025년 10월 17일에 처음 게시한 일기입니다. 본문의 ‘이번 주’, 예정 행사와 포스터는 당시의 기록이며 현재의 행사 안내가 아닙니다.
이번 주에는 모든 것—몸, 가르침, 일정, 심지어 스프레드시트까지—이 같은 리듬 주기에 맞춰 움직이는 듯했다.
예술과 질서가 조화를 이루면 하루는 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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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몸
개인 수업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무언가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다.
흐름.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가지가 멈춘다면, 무언가가 그것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방향을 바꾼다면, 어떤 힘이 그것을 밀기 때문이다.
몸도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팔의 움직임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숨결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마치 공기 자체가 음악을 실어 나르듯이.
춤에는 텅 빈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 움직임과 다음 움직임 사이에는 생명, 의도, 이어짐이 있어야 한다.
춤은 조각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어지지 않는 흐름이다.
그래서 몸짓 하나하나가 하나의 말이고,
몸은 영혼과 나누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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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바라보는 눈
또 다른 날, 한 수강생과 이야기하다가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배움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 바로 현재를 놓친다.
플라멩코에서도, 삶에서처럼,
두 눈을 모두 목표에 고정하면 넘어진다.
발밑의 땅도, 자신을 받쳐 주는 공기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 눈으로 목표를 바라보고
다른 쪽 눈으로 길을 살피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배운다.
한쪽 눈은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고,
다른 쪽 눈은 걷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 일깨워 준다.
균형은 그곳에 있다. 방향과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마음 사이에.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덧붙였다.
좋은 것은 목표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길을 음미하는 일이라고.
그 길을 음미하지 않으면,
정말 도착했는지 결코 알 수 없고,
도착하더라도 그 맛은 같지 않을 테니까.
걸음마다 저마다의 맛이 있다.
리듬 주기마다 저마다의 숨결이 있듯이.
여정을 즐기지 않으면,
목표는 그 감정의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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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지탱하는 슬픔
요 며칠, 오래된 노랫말 하나가 내 곁에 머물렀다.
“내 슬픔은 더 크다. 내 안에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픔은 무게가 아니라 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뿌리에서 예술의 꽃이 피어난다.
상처 없는 춤은 없고,
깊은 호흡 없는 리듬 주기도 없다.
공부하는 노랫말마다 나를 본질로 되돌려 놓는다.
밖으로 표현하기 위해 안을 바라보는 일로.
그렇게 예술은 기교를 넘어 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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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콤파스
서류와 일정표, 달력 사이에서 아름다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정리와 체계에도 예술적 혼이 깃들 수 있다는 것.
삶의 리듬이 질서를 찾으면,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구조를 잡는 것은 제한하는 일이 아니다.
감정이 더 또렷하게 울릴 수 있는 고요를 만드는 일이다.
표 하나, 규칙 하나, 일정표 하나도 음악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담아 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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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도 춤춘다
이름과 흐름, 단계들을 정리했고,
수많은 조정 속에서 평온을 발견했다.
명료함은 자유를 준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 알면 다시 왜 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하루에 구조가 있으면,
영혼은 즉흥적으로 펼쳐질 수 있다.
방법이 있으면 날아오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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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말한다
피곤한 날들과 조용한 신호들이 있었다.
목의 뻣뻣함, 잠시 쉬어 달라는 신호.
나는 귀를 기울였다.
건강을 돌보는 것은 멈춰 서는 일이 아니다.
우리를 지탱하는 악기를 조율하는 일이다.
잘 자고, 정갈하게 먹고, 천천히 숨 쉬는 것,
그 모든 것 역시 플라멩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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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돌보는 원
수강생들이 질문과 감사의 말을 건네며 다가온다.
다정하게 답하는 것 또한 가르침의 한 방식이다.
함께 나누는 말 하나하나에는—메시지든 눈빛이든—
같은 바람이 담겨 있다.
콤파스와 진실을 품고 계속 배우고 싶다는 바람.
그 고요한 주고받음 속에서,
예술은 가장 인간적인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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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것들
곧 새로운 타블라오의 밤이 찾아올 것이다.
그 무대의 핵심 단어는 진실일 것이다.
수업은 계속 실시간으로 진행될 것이다.
어떤 수업은 열린 자리에서, 어떤 수업은 친밀한 자리에서.
모든 수업의 목적은 같다.
계속해서 뿌리와 날아오름을,
고요와 콤파스를 잇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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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질서는 예술적 혼을 꺼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지켜 준다.
방법은 예술을 차갑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예술에 몸을 부여한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면,
마음은 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도.
영혼을 담아 만든 체계라면,
그것도 춤추기 때문이다.
Be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