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것


관객이 바라보는 동안 플라멩코 안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들은 플라멩코를 볼 때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무용수와 기타를 보고 노래를 듣습니다. 힘과 움직임, 콤파스, 안무, 에스코비야, 레마테를 봅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 안에서는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말로 제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일들입니다.


오랫동안 춤을 추고 가르치며 플라멩코와 함께 살아온 뒤,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밖에서 플라멩코를 보는 것과 그 안에 있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좋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다릅니다.


— ◆ —


콤파스


관객도 음악을 듣고 우리도 듣습니다. 하지만 안에 있을 때 콤파스는 단순히 리듬을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제게는 어떤 공간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들어갈 수 있는지, 어디서 기다려야 하는지, 어디서 밀어붙일 수 있는지, 어디서 숨 쉴 여유를 줄 수 있는지 압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준비되고 있다는 기척도 느낍니다.


밖에서는 음악 위에 스텝을 얹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들으며 끊임없이 판단합니다.


— ◆ —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관객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성과 연습, 알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이 있다고 해서 매번 똑같이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다르게 부를 수도 있고, 기타의 호흡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느낄 수도, 조금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느낄 수도, 기다려야 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과 함께 무대를 만든다는 점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즉흥을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 ◆ —


눈빛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 눈을 자주 맞춥니다. 눈빛 하나로 분명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다려.’ ‘계속해.’ ‘들어갈게.’ ‘끝낼게.’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관객이 강렬한 춤의 순간을 보는 동안, 우리 사이에서는 훨씬 작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찰나의 눈빛으로 모든 말이 전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합니다. 혼자 춤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 —


하지 않을 줄 아는 것


이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처음 배울 때 그렇습니다. 춤을 잘 추려면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많은 발동작과 팔동작, 강한 힘, 많은 레마테.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기다리고, 듣고, 가만히 있고, 노래가 끝나도록 기다리고, 기타가 말하게 두고, 필요 없는 곳에 끼어들지 않는 것. 쉽지 않습니다. 침묵도 플라멩코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잘 놓인 침묵 하나가 스무 개의 스텝보다 강할 때가 많습니다.


— ◆ —


스텝이 전부는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스텝을 완벽히 익히고, 저와 같은 동작을 하고, 팔을 같은 자리에 놓고, 같은 타격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같은 춤을 추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의도입니다.


왜 그 스텝을 하는가요? 무엇을 말하는가요? 어디로 가는가요? 밀어붙이고 있나요, 기다리나요, 함께하나요, 숨 쉬나요? 두 사람이 똑같은 동작을 해도 한 사람은 무언가를 전하고 다른 사람은 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플라멩코는 안무를 배우는 것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 ◆ —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관객에게 쉽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걷기, 멈추기, 팔 올리기, 돌기,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 그런 것들이 정말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있습니다. 균형, 힘, 조절, 지구력, 협응. 수많은 시간과 여러 해입니다.


몸은 조금씩 배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이 보이지 않아야 할 때가 옵니다. 스무 가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 ◆ —


노래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기


제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안무만 생각하며 춤출 수는 없습니다. 자기 스텝을 기다리느라 듣지 않는다면 이미 그 순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어떻게 숨 쉬는지, 한 구절을 어떻게 시작하고 늘이고 끝내는지, 어디서 힘을 주고 어디서 풀며 어디에 공간을 남기는지 들어야 합니다.


계획해 둔 것이 있어도 노래를 듣고 바꿔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플라멩코입니다. ‘이제 이 스텝을 할 차례다’가 아니라,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고, 나도 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 ◆ —


두려움도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관객은 이미 무대에 오른 예술가를 봅니다. 밖에서는 아주 자신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기 전에는 여러 생각이 지나갑니다. 긴장, 의심, 두려움, 들어가기 직전의 조금 이상한 호흡.


경험이 쌓인다고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나가야 할 때가 옵니다. 자신 있든 없든, 두렵든 아니든 나갑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 ◆ —


집으로 가져가는 것


공연이 끝나면 관객이 박수를 보냅니다.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기억하는 것은 박수와 관계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순간일 수 있습니다. 눈빛, 침묵, 노래하는 사람이 한 것, 기타의 응답, 모두가 같은 곳에 있다고 느낀 순간.


잘못된 것을 함께 바로잡은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런 것이 남습니다. 저는 가장 화려한 장면보다, 무언가가 정말 일어났던 그 찰나를 집으로 가져가곤 합니다.


— ◆ —


플라멩코는 춤과 노래, 기타보다 훨씬 큽니다


플라멩코를 설명하려고 하면 늘 춤과 노래, 기타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게 플라멩코는 훨씬 큰 것입니다. 말하는 방식, 함께 이해하는 신호, 눈을 맞추는 방식, 존중, 함께하는 방식, 기억이 있습니다.


칠판 앞에 앉히지 않고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 번 보고서야 배우는 것도 있고, 어느 날 문득 이해하는 것도 있습니다. 플라멩코는 변하고 발전합니다.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정의 안에 모두 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 ◆ —


흔히 보이지 않는 것


결국 관객은 춤을 보고 노래와 기타를 듣습니다. 하지만 무대 안에서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듣고, 말없이 대화하고, 망설이고, 기다리고, 결정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조절하고, 상대에게 공간을 남깁니다. 이 모든 것이 몇 초 안에 일어납니다.


제게 플라멩코는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플라멩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많이 공부하고 연습하며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순간이 오면 끝까지 준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일어났을 때, 관객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해도 느낍니다.


— Benito García —